할머니 100만 원만 줘봐
선수 시절 주목받았던건 준수한 실력뿐 아니라 도저히 운동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고 완벽한 외모 덕분이었다. 별명이 '테리우스' 였으며 수많은 여성 팬을 몰고 다녔다. 이러한 귀공자처럼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청소년 대표팀에 처음 뽑혔을 때 오렌지를 처음 먹어봤을 정도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안정환이 6살 때 외갓집이 사업 실패로 어려워져 그 충격으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어머니가 커피숍을 하다가 망한 뒤 외할머니와 단둘이 판자촌에서 빈곤하게 살아야 했다. 흑석동 판자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안정환은 배고픔에 못 이겨 "축구부에 들어오면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축구를 시작했다. 하루 한 끼로 빵과 우유로는 부족했던 안정환은 운동이 끝나면 한강 둔치에 가 무당들이 한강 주변에서 죽은 이들을 위해 굿을 연 뒤놓고 간 떡과 과일을 먹으며 허기를 채워야 했다. 이마저도 없을 때면 배추밭에 가서 배추 밑동을 뽑아 먹었다. 옷이 없어서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은 그런 안정환을 놀렸었다. 그래서 남의 집 빨래를 훔치고, 산에 흩뿌려진 삐라를 주워서 미군부대에 신고하여 학용품을 마련했다. 차비가 부족해 버스를 타고 가야 될 학교를 걸어서 다니고 차비가 역시 아까워서 학교 체육 창고에서 잠을 해결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하루는 안정환이 말했다. '할머니 100만 원만 줘봐' 할머니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가서 아버지를 사 오게.. 100만 원만 줘봐'라며 얘기를 했으며 실제로 차두리의 아버지가 차범근이라는 사실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한다.
안정환은 중. 고등학교 시절 한 번은 축구부원 숫자대로 지급받은 빵과 우유가 하나 비어버리자 선배 한 명이 안정환을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구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다른 선배가 "그거 내가 먹고 나갔는데?" 한마디에 화가 나서 그 길로 합숙소를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정환은 축구부 이탈과 복귀를 반복하며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하철 5호선 목동역도 그의 손으로 지었다. 안정환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런 말을 했다. "목동역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죽을 만큼 고생하면서 열심히 내 손으로 목동역을 지었다." 결혼한 뒤 그의 아내는 안정환이 깎은 과일이 너무도 가지런해 놀란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럴 이유가 있었다. 돈을 위해 나이트 웨이터까지 했을 정도로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안정환의 의리
안정환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유명 대학교에 그의 스카우트 전쟁이 펼쳐졌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축구를 하던 안정환이었지만 실력은 최고였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다소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대학교를 선택한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안정환이라면 충분히 다른 좋은 대학에 입학할 능력이 있었지만, 그의 동료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동료들과 함께 입학하는 조건으로 그는 아주대를 선택하였다. 자기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에 그는 동료들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안정환이 있는 아주대는 대학 축구 최정상의 자리에 서게 된다. 1997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 직후 돌아오자마자 후반에 투입되어 혼자 2골 1어시스트하면서 1 대 2로 지던 팀을 5:2로 역전승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연히 프로팀에서도 그를 눈여겨봤고 졸업과 동시에 부산 대우에 입단할 수 있었다.
판타지스타
그는 훗날 2002년 월드컵에서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연장 끝에 극적인 헤딩골로 8강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그리고 선수 커리어 막바지 힘들 거 같던 2006년 월드컵 국가대표에 승선해 조별예선 1차전 토고 상대로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다시 한번 이름을 알렸다. 대한민국에 '판타지스타'가 등장한 것이다.
우리는 안정환의 화려한 모습만 봐 왔다. 귀공자 같은 외모와 대한민국 축구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한 플레이 때문에 그를 풍족한 환경에서 축구하는 이로 바라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있었다. 학연과 지연이 판치는 세상에 실력 하나로 정상에 우뚝 선 안정환은 축구를 넘어서 이 세상에 큰 메시지를 던져줬다.
"우리는 살면서 과거에 아니면 지금 이 순간 힘든 시기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들이 훗날 성공담으로 덤덤하게 힘든 과거에 대해 얘기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빵과 우유로 축구 인생을 시작한 '안정환'처럼 말이다. "
'위대한 동기부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너 맥그리거 "일어날거라고 믿었고 일어나도록 노력을 쏟았다." (0) | 2022.12.01 |
---|---|
김연아 난 머리카락 한올도 흔들리지 않겠다. (0) | 2022.11.29 |
최동원 "알겠심더. 마, 함 해 보입시더." (0) | 2022.11.27 |
산티 카솔라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생각을 했었다. (0) | 2022.11.27 |
조지포먼 40살이란 나이는 사형선고가 아니다. (0) | 2022.11.26 |
댓글